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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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구절 사전

사무엘하 4:10

좋은 소식의 값

  • 복음의 말 בְּשֹׂרָה besorah · 기쁜 소식
  • 복음의 말 בָּשַׂר basar · 소식을 전하다
시글락의 천막 앞에서 한 젊은이가 무릎을 꿇고 사울의 왕관과 팔찌를 내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그 앞에 서서 자기 옷을 찢습니다.
얀 라위컨,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듣는 다윗〉, 1708년 (레이크스 미술관) · 출처

원어

삼하 4:10

번역

흠정역

전에 한 사람이 내게 고하여 이르기를, 보소서, 사울이 죽었나이다, 하며 좋은 소식을 가져온 줄로 생각하였으나 내가 그를 붙잡아 시글락에서 죽였나니 그는 자기의 소식으로 인해 내가 자기에게 보상을 주리라고 생각하였느니라.

개역한글

전에 사람이 내게 고하기를 사울이 죽었다 하며 좋은 소식을 전하는 줄로 생각하였어도 내가 저를 잡아 시글락에서 죽여서 그것으로 그 기별의 갚음을 삼았거든

BSB

when someone told me, ‘Look, Saul is dead,’ and thought he was a bearer of good news, I seized him and put him to death at Ziklag. That was his reward for his news!

KJV

When one told me, saying, Behold, Saul is dead, thinking to have brought good tidings, I took hold of him, and slew him in Ziklag, who thought that I would have given him a reward for his tidings:

LSV

when one is declaring to me, saying, Behold, Saul is dead, and he was as a bearer of tidings in his own eyes, then I take hold on him, and slay him in Ziklag, instead of my giving to him [for] the tidings.

주석

  • 매튜 헨리 삼하 4:8-12 전체에 대하여

    사람이 자기의 정당한 소원을 이루게 되어 기뻐하면서도, 그것을 이루게 된 수단은 진정으로 애석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자기가 이득을 보게 된 어떤 사람의 죽음을 슬퍼할 수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가장 비열한 동기에서 무죄한 피를 흘렸습니다. 다윗은 마땅히 그들에게 보복을 집행하였습니다. 그는 불법한 수단으로 자기를 돕는 누구에게도 신세 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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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웨슬리

    이 구절에 대한 말은 따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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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다윗은 사울의 죽음을 좋은 소식이라 여기고 상을 바랐던 사람을 떠올립니다. 이 한 절에 동사 와 명사 가 함께 나오고, 명사는 여기서 소식 자체가 아니라 소식을 가져온 사람이 받는 값을 뜻합니다.

사울이 죽은 뒤 그의 아들 이스보셋이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유다는 다윗을 따랐습니다. 이스보셋 밑에서 무리를 이끌던 두 대장 레갑과 바아나는 한낮에 침상에 누운 그를 죽이고 머리를 베어 헤브론의 다윗에게 가져왔습니다. 그들은 이 일을 신앙의 말로 감쌌습니다. "주께서 이 날 사울과 그의 씨에게 내 주 왕의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삼하 4:8). 다윗은 "내 혼을 모든 역경에서 구속하신 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삼하 4:9) 맹세하며, 시글락에 왔던 아말렉 사람을 떠올립니다 (삼하 1:2–16). 그 사람도 사울의 죽음을 반가운 소식으로 여겼고, 자기 손으로 사울을 죽였다고까지 말했습니다. 다윗은 그를 죽였고, 이제 의로운 사람을 그의 집 침상에서 죽인 두 사람도 그렇게 다스립니다 (삼하 4:11–12).

동사는 키므바세르(כִמְבַשֵּׂר)입니다. 바사르의 피엘 분사에 ‘처럼’을 뜻하는 전치사가 붙어, 그가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자처럼’ 왔다는 말이 됩니다. 히브리어는 여기에 ‘자기 눈에’를 덧붙입니다. 소식이 좋다는 것은 그 사람의 셈이었을 뿐입니다. 명사 베소라는 절 끝에 나오며, 문맥으로 보아 소식을 가져온 대가, 곧 상을 뜻합니다. 칠십인역은 이 명사를 복음을 뜻하는 의 복수형으로 옮겼습니다. 옛 헬라어에서도 이 말이 가장 먼저 가리킨 것은 좋은 소식을 가져온 사람에게 주는 상이었으니, 바로 그 뜻입니다.

절 끝의 짧은 말을 두고 번역이 갈립니다. 흠정역은 킹제임스 성경을 따라 ‘그는 자기의 소식으로 인해 내가 자기에게 보상을 주리라고 생각하였느니라’라고 하여 그 사람이 바란 것을 말합니다. 개역한글은 ‘그것으로 그 기별의 갚음을 삼았거든’이라고 하여 그가 실제로 받은 것, 곧 죽음이 그 소식의 값이었다고 읽습니다. BSB도 개역한글처럼 읽습니다. 히브리어의 관계사가 사람을 가리키는지 다윗이 한 일을 가리키는지에 따라 두 읽기가 다 가능합니다. 어느 쪽이든, 그가 기대한 상과 그가 받은 값이 정반대였다는 데에 이 절의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매튜 헨리는 "사람이 자기의 정당한 소원을 이루게 되어 기뻐하면서도, 그것을 이루게 된 수단은 진정으로 애석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다윗은 왕위를 바랐지만 살인으로 얻는 왕위는 원하지 않았습니다. 헨리의 말로 하면 "그는 불법한 수단으로 자기를 돕는 누구에게도 신세 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매튜 헨리.

아말렉 사람은 소식이 자기에게 무엇을 벌어 줄지를 셈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두고 정반대의 셈을 합니다. "나의 보상이 무엇이냐? 진실로 내가 복음을 선포할 때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값없이 선포하고" (고전 9:18). 상을 바라고 가져온 소식과 값없이 건네는 소식, 그 차이가 이 구절과 복음 사이에 있습니다.

출처

  1.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번역자들, 칠십인역 (구약의 그리스어 번역) — 기원전 3–1세기.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옮긴 번역으로, 신약의 저자들이 자주 인용한다. בָּשַׂר(바사르)를 대개 εὐαγγελίζομαι(에우앙겔리조마이)로 옮겼고(사무엘하 18장, 시편 40:9, 68:11, 96:2, 이사야 40:9, 52:7, 61:1), 사무엘하 4:10에서는 소식의 상을 εὐαγγέλια라 했다. 영역: 브렌턴(1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