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17
먼 데와 가까운 데에 전하신 화평
- 복음의 말 εὐαγγελίζομαι euangelizomai · 복음을 전하다
원어
번역
또 그분께서 오셔서 멀리 떨어져 있던 너희에게와 가까이 있던 그들에게 화평을 선포하셨느니라.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He came and preached peace to you who were far away and peace to those who were near.
And came and preached peace to you which were afar off, and to them that were nigh.
and having come, He proclaimed good news—peace to you—the far-off and the near,
주석
매튜 헨리 엡 2:14-18 전체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희생제물로 드리심으로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모든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그들의 화평이시니, 그들이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고 믿는 유대인들과 한 교회로 연합하게 된 것의 창시자요 중심이요 실체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위격과 희생과 중보를 통하여 죄인들은 하나님께 아버지로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허락되었으며, 성령의 가르침 아래서 성부와 성자와 하나로서 자기들의 예배와 섬김을 가지고 받아들여져 그분의 앞에 인도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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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분께서 오셔서 - 부활하신 후에입니다. 화평을 선포하셨느니라 - 그분의 일꾼들과 그분의 영으로입니다. 너희에게 - 이방인들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던 - 하나님에게서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자들입니다. 가까이 있던 그들에게 - 상대적으로 가까이 있던 유대인들로서, 그분의 보이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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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에베소서 2장 후반은 이방인과 유대인을 갈라놓던 담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허물어졌다고 말합니다. 그 끝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오셔서 두 편 모두에게 화평을 좋은 소식으로 전하셨다고 씁니다.
또 그분께서 오셔서 멀리 떨어져 있던 너희에게와 가까이 있던 그들에게 화평을 선포하셨느니라.
엡 2:17바울은 이방인 독자들에게 그들이 한때 그리스도 밖에, 이스라엘 연방 밖에, 약속의 언약들 밖에 있었다고 상기시킵니다(2:12). 그러나 이제 그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엡 2:13).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시니라"(엡 2:14). 그분은 둘 사이의 "중간 분리 벽을 허무시고"(엡 2:14) 둘을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으로 지으셨으며, 십자가로 둘 다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셨습니다(15–16절). 17절은 이 일을 소식으로 바꾸어 말합니다. 이루어진 화평이 이제 선포됩니다.
동사는 의 부정과거 중간태 3인칭 단수 εὐηγγελίσατο로, ‘좋은 소식으로 전하셨다’는 뜻이고, 그 목적어가 ‘화평’(εἰρήνην)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좋은 소식의 내용이 곧 화평입니다. 이 말에는 이사야의 두 구절이 함께 울립니다. 칠십인역은 이사야 52:7의 전령을 바로 이 동사로 그려 ‘화평의 소식을 좋은 소식으로 전하는 자’라 하고, 이사야 57:19는 "멀리 있는 자와 가까이 있는 자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사 57:19)라고 합니다. 바울은 그 먼 자를 이방인으로, 가까운 자를 유대인으로 읽습니다. 18절이 그 소식의 열매를 말합니다. 그분을 통하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흠정역은 ‘화평’을 한 번만 쓰고, 개역한글은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라고 두 번 씁니다. 킹제임스 성경이 따르는 공인 본문에는 이 말이 한 번, 오래된 사본들에는 두 번 나오기 때문입니다. 되풀이된 ‘평안’은 이사야 57:19가 평강을 두 번 부르는 것과 닮았습니다.
두 번역은 동사도 다르게 옮깁니다. 흠정역은 ‘선포하셨느니라’, 개역한글은 ‘전하셨으니’라고 하여, 둘 다 ‘복음’이라는 말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원문에서는 동사 자체가 ‘좋은 소식을 전하다’입니다. 흠정역의 ‘화평’과 개역한글의 ‘평안’은 같은 말(εἰρήνη)로, 원수 되었던 사이가 화해한 상태와 그 안에서 누리는 안식을 함께 담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언제 오셔서 전하셨는지를 두고 읽기가 갈립니다. 웨슬리는 "부활하신 후에입니다"라고 하고, 그 선포가 "그분의 일꾼들과 그분의 영으로"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웨슬리. 땅에서의 사역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고, 십자가의 일 전체를 하나의 선포로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화평을 전하시는 분은 사도가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매튜 헨리는 그리스도가 그들이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고 믿는 유대인들과 한 교회로 연합하게 된 것의 "창시자요 중심이요 실체이십니다"라고 쓰고 매튜 헨리, 18절을 두고 "성령께서는 나아갈 마음과 나아갈 힘을 주시며"라고 덧붙입니다 매튜 헨리.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이방인도 들어갈 수 있는 바깥뜰과 안쪽 뜰 사이를 돌난간이 갈랐고, 거기에 이방인은 이 난간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 들어오다 잡힌 자는 죽음을 자초한다고 새긴 그리스어 경고문이 서 있었습니다. 1871년에 그 비문 하나가 발견되었습니다 성전의 이방인 경고 비문. 바울 자신도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갔다는 의심을 받아 붙잡혔습니다(행 21:29). 많은 해석자는 14절의 ‘중간 분리 벽’에서 이 난간을 떠올립니다.
이 절에서 복음은 먼저 그 내용을 말합니다. 화평입니다. 스스로 멀리 있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도, 가까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도 같은 소식이 같은 분에게서 옵니다.
출처
-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번역자들, 칠십인역 (구약의 그리스어 번역) — 기원전 3–1세기.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옮긴 번역으로, 신약의 저자들이 자주 인용한다. בָּשַׂר(바사르)를 대개 εὐαγγελίζομαι(에우앙겔리조마이)로 옮겼고(사무엘하 18장, 시편 40:9, 68:11, 96:2, 이사야 40:9, 52:7, 61:1), 사무엘하 4:10에서는 소식의 상을 εὐαγγέλια라 했다. 영역: 브렌턴(1844).
- 예루살렘 성전, 성전의 이방인 경고 비문 — 1세기. 이방인은 성소를 두른 난간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 들어오다 잡힌 자는 죽음을 자초한다고 새긴 그리스어 비문. 1871년 클레르몽-가노가 찾았다. 요세푸스도 이 경고를 전한다(유대 고대사 15.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