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1:6
다른 복음으로 옮겨가다
- 복음의 말 εὐαγγέλιον euangelion · 복음
원어
번역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너희를 부르신 분을 너희가 이렇게 속히 떠나 다른 복음으로 옮겨가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I am amazed how quickly you are deserting the One who called you by the grace of Christ and are turning to a different gospel —
I marvel that ye are so soon removed from him that called you into the grace of Christ unto another gospel:
I wonder that you are so quickly removed from Him who called you in the grace of Christ to another good news—
주석
매튜 헨리 갈 1:6-9 전체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이 보여 주는 것 외에 하늘로 가는 다른 길을 세우려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비참하게 잘못되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도는 갈라디아 사람들이 복음의 칭의의 길을 버린 데 대하여 마땅히 죄의식을 가지도록 강력히 촉구하지만, 그들을 괴롭게 한 어떤 자들의 술수에 끌려 들어간 것으로 그려 내며 부드럽게 책망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책망할 때 우리는 충실해야 하되 온유한 심령으로 그들을 바로잡으려고 힘써야 합니다. …
주석 전체 보기 →웨슬리 갈 1:6
너희가 이렇게 속히 떠나 다른 복음으로 옮겨가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 내가 너희를 떠난 후에.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너희를 부르신 분을 - 그분의 은혜로운 복음과 은혜로운 능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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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바울의 편지들은 대개 인사 다음에 감사로 이어집니다(롬 1:8, 고전 1:4). 갈라디아서에는 그 감사가 없습니다. 은혜와 평강을 빌고 찬송을 ‘아멘’으로 맺자마자, 바울은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로 말을 꺼냅니다. 그에게서 복음을 받은 갈라디아의 교회들이 다른 것으로 옮겨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절의 복음은 명사 이고, 그 앞에 가 붙어 ‘다른 종류의’ 복음이 됩니다. 바울은 그것을 같은 소식의 다른 판본으로 보지 않습니다. 바로 다음 절에서 그는 그것이 아예 복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갈 1:7).
동사 μετατίθεσθε는 자리나 편을 옮기는 말로, 히브리서가 에녹이 옮겨져서 죽음을 보지 않았다고 할 때 쓴 동사입니다(히 11:5). 시제는 현재입니다. 갈라디아 사람들은 이미 떠나 버린 것이 아니라 떠나는 중이고, 이 편지는 그 걸음을 돌리려고 쓰였습니다. 그들이 떠나는 것은 한 가지 가르침이기 전에 "너희를 부르신 분"이십니다. 복음을 바꾸는 일은 곧 그 복음으로 부르신 하나님에게서 돌아서는 일입니다.
흠정역은 킹제임스 역본을 따라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너희를 부르신 분을"이라고 옮겨, 은혜를 부르심을 받아 들어간 자리로 그립니다. 개역한글은 ‘그리스도의 은혜로’라고 하여 은혜를 부르심의 수단으로 읽습니다. 헬라어 ἐν χάριτι는 두 뜻을 다 품을 수 있습니다. 또 흠정역의 ‘다른 복음으로 옮겨가는’은 동사가 그리는 이동을 살리고, 개역한글의 ‘다른 복음 좇는’은 그들이 무엇을 뒤따르고 있는지를 드러냅니다.
매튜 헨리는 바울이 그들의 잘못을 분명히 짚으면서도 "그들을 괴롭게 한 어떤 자들의 술수에 끌려 들어간 것으로 그려 내며 부드럽게 책망합니다"라고 봅니다 매튜 헨리.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그분의 은혜로운 복음과 은혜로운 능력으로"라고 풀어 웨슬리, 그들을 부르신 일 자체가 이미 복음의 일이었다고 봅니다.
‘복음’이라는 말은 바울이 처음 쓴 말이 아니어서, 갈라디아 사람들이 살던 세계에는 황제의 탄생을 기린 비문처럼 ‘복음’이라 불리는 소식이 여럿 있었습니다 프리에네 비문. 그러나 이 절에서 바울이 맞서는 것은 황제의 소식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복음’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두고 내용을 바꾼 소식입니다.
오늘도 ‘복음’이라는 이름을 단 말은 많습니다. 이 절은 물음을 이름에서 내용으로 옮겨 놓습니다. 그것이 여전히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소식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출처
- 아시아 속주 의회, 프리에네 달력 비문 — 기원전 9년. 아우구스투스의 생일을 새해 첫날로 정하며 "신의 탄생일은 그로 말미암은 기쁜 소식(복음, εὐαγγέλια)의 시작이었다"고 새겼다. 영역: 다이스만, 『고대 동방의 빛』(1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