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1:9
너희가 받은 복음
- 복음의 말 εὐαγγελίζομαι euangelizomai · 복음을 전하다
원어
번역
우리가 전에 말한 것 같이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너희가 받아들인 것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As we have said before, so now I say again: If anyone is preaching to you a gospel contrary to the one you received, let him be under a curse!
As we said before, so say I now again, If any man preach any other gospel unto you than that ye have received, let him be accursed.
As we have said before, and now say again: if anyone may proclaim to you good news different from what you received—let him be accursed!
주석
매튜 헨리 갈 1:6-9 전체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이 보여 주는 것 외에 하늘로 가는 다른 길을 세우려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비참하게 잘못되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도는 갈라디아 사람들이 복음의 칭의의 길을 버린 데 대하여 마땅히 죄의식을 가지도록 강력히 촉구하지만, 그들을 괴롭게 한 어떤 자들의 술수에 끌려 들어간 것으로 그려 내며 부드럽게 책망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책망할 때 우리는 충실해야 하되 온유한 심령으로 그들을 바로잡으려고 힘써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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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에 대한 말은 따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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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바울은 방금 한 말을 되풀이합니다. "우리가 전에 말한 것 같이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같은 저주를 두 번 쓰는 것은 흥분해서가 아니라, 이것이 옮길 수 없는 경계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문장은 첫 번째를 그대로 베낀 것이 아닙니다.
8절은 가정이었습니다. ἐάν과 가정법으로, 혹시 우리나 천사가 그렇게 한다면. 9절은 εἰ와 현재 직설법 εὐαγγελίζεται를 씁니다. 지금 누가 그렇게 하고 있다면. 가정은 이제 눈앞의 일을 가리킵니다. 갈라디아에는 실제로 그런 이들이 와 있었습니다(갈 1:7). 동사는 같은 이고, 여기서는 ‘너희를’(ὑμᾶς)을 직접 목적어로 받습니다. ‘전에 말한’의 προειρήκαμεν은 완료형으로, 방금 8절에서 한 말을 가리킬 수도 있고 바울이 갈라디아에 있을 때 미리 한 경고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기준도 옮겨 갑니다. 8절의 기준은 ‘우리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이었고, 9절의 기준은 ‘너희가 받아들인 것’입니다. ‘받아들이다’의 παρελάβετε는 전해진 것을 이어받을 때 쓰는 말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내가 또한 받은 것을 무엇보다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고전 15:3)라고 쓸 때의 ‘받다’가 같은 동사입니다. 복음은 이제 바울만의 것이 아니라 갈라디아 사람들의 것이고, 그들이 그것을 지키는 자입니다. 흠정역의 ‘너희가 받아들인 것 외에’와 개역한글의 ‘너희의 받은 것 외에’는 이 점에서 거의 같게 옮깁니다. 다만 두 번역 모두 8절과 9절을 똑같이 ‘선포하면’, ‘전하면’으로 맺어, 가정법에서 직설법으로 바뀌는 헬라어의 변화는 한국어 문장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매튜 헨리는 복음이 비틀릴 수 있는 두 방향을 함께 경고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 이외의 모든 다른 복음은 자기 의의 교만에 더 아첨하는 것이든 세상의 정욕에 더 호의적인 것이든 사탄의 계략입니다" 매튜 헨리. 선행을 그리스도의 의의 자리에 두는 것도, 도덕률을 삶의 규칙으로 버리는 것도 같은 복음을 떠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아나테마는 뒤에 교회가 신앙의 경계를 그을 때 쓰는 말이 되었습니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는 신경 끝에, 아들이 계시지 않던 때가 있었다고 말하는 자들을 공교회가 아나테마로 선언한다는 문장을 덧붙였습니다 니케아 신경. 공의회들은 바울이 이 두 절에서 쓴 바로 그 말로 신앙의 경계를 그었습니다.
이 절의 엄한 말은 듣는 이를 겨누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받은 복음을, 그것을 바꾸려는 이들에게서 지키려는 말입니다.
출처
- 니케아·콘스탄티노플 공의회, 니케아 신경 325/381 — 동서방 교회가 함께 고백하는 신조. 325년에 아들이 아버지와 동일 본질이시라고 고백했고, 381년에 성령을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분,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경배와 영광을 받으시는 분으로 고백하는 말을 더했다. 서방 교회는 뒤에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오신다는 말(필리오케)을 더했다.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