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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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구절 사전

갈라디아서 2:2

사도들 앞에 내놓은 복음

  • 복음의 말 εὐαγγέλιον euangelion · 복음
늦은 오후, 지팡이와 보따리를 든 나그네 셋이 등을 보이며 계단식 올리브 밭 사이 돌길을 따라 언덕 위로 길게 뻗은 예루살렘의 돌 성벽을 향해 올라갑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세 나그네

원어

갈 2:2

번역

흠정역

내가 계시로 말미암아 올라가 내가 이방인들 가운데서 선포하는 그 복음을 그들에게 전달하되 명성 있는 자들에게는 개인적으로 하였으니 이것은 어찌하든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개역한글

계시를 인하여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저희에게 제출하되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BSB

I went in response to a revelation and set before them the gospel that I preach among the Gentiles. But I spoke privately to those recognized as leaders, for fear that I was running or had already run in vain.

KJV

And I went up by revelation, and communicated unto them that gospel which I preach among the Gentiles, but privately to them which were of reputation, lest by any means I should run, or had run, in vain.

LSV

and I went up by revelation, and submitted the good news to them that I preach among the nations, and privately to those esteemed, lest I ran or might run in vain;

주석

  • 매튜 헨리 갈 2:1-10 전체에 대하여

    사도가 이방인들 가운데서 전하였고 여전히 전하기로 결심한 교리, 곧 유대교의 모든 혼합에서 벗어난 기독교의 교리를 충분히 설명하는 데 보인 그의 충실함을 주목하십시오. 이 교리는 많은 사람에게 달갑지 않았으나 그는 그것을 인정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염려는 그의 지난 수고의 성공이 줄어들거나 그의 장래의 유용함이 방해받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수고의 성공을 단순히 하나님께 의지하면서도, 오해를 풀고 반대자들에 맞서기 위하여 모든 알맞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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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웨슬리 갈 2:2

    올라가 - 그들의 어떤 명령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백한 계시로. 그들에게 전달하되 -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내가 이방인들 가운데서 선포하는 그 복음을 - 행 15:4,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에 관한 것입니다. 그들이 이에 대해 나를 확증해 주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내가 그들에게서 편견을 제거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공개적으로가 아니라 각각 말하였다는 것입니다. 명성 있는 자들에게는 개인적으로 하였으니 -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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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십사 년 뒤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헬라인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갈 2:1, 갈 2:3). 그 걸음은 누가 불러서가 아니라 "계시로 말미암아" 내디딘 것이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자기가 이방인들 가운데 전하는 복음을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 앞에 내놓았습니다.

이 방문이 사도행전의 어느 방문인지는 해석이 갈립니다. 웨슬리는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회의로 보았고 웨슬리, 구제금을 들고 간 사도행전 11장의 방문으로 보는 해석도 있습니다(행 11:29–30). 어느 쪽이든 쟁점은 같았습니다. 이방인 신자가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가 하는 물음입니다(행 15:1).

이 절의 복음은 명사 이고, ‘선포하다’는 전령이 외치는 동사 κηρύσσω입니다. 현재 시제이니 ‘내가 선포하는’, 곧 지금도 전하고 있는 복음입니다. 바울은 그때까지 같은 복음을 전해 왔고, 예루살렘에 가서도 그것을 고치지 않았습니다. ‘전달하다’로 옮긴 ἀνεθέμην은 남이 따져 볼 수 있도록 사정을 펼쳐 보이는 말로, 베스도가 바울의 사건을 아그립바 왕 앞에 꺼내 놓을 때에도 쓰였습니다(행 25:14).

흠정역은 ‘그들에게 전달하되’, 개역한글은 ‘저희에게 제출하되’라고 옮깁니다. ‘제출하다’는 심사를 받으려고 내놓는 느낌을, ‘전달하다’는 알리는 느낌을 줍니다. 헬라어 동사는 그 사이에 있습니다. 바울은 판단을 구하며 복음을 펼쳐 보였지만, 이미 그 복음이 사람에게서 나지 않았다고 말했고(1:11–12), 그 만남은 지도자들이 그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오른손을 내미는 것으로 끝났습니다(갈 2:9). 웨슬리는 그 복음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에 관한 것이었다고 하면서, 바울이 그것을 내놓은 까닭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이에 대해 나를 확증해 주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내가 그들에게서 편견을 제거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웨슬리.

그러면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는 무슨 걱정이었을까요. 복음의 참됨을 의심한 것은 아닙니다(1:8). 웨슬리는 이를 "나의 현재와 과거의 수고의 열매를 잃지 않으려는 것"으로 읽습니다 웨슬리. 예루살렘과 갈라진다면 이방인 교회들의 일이 크게 흔들렸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매튜 헨리도 "그의 염려는 그의 지난 수고의 성공이 줄어들거나 그의 장래의 유용함이 방해받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확신은 교제를 피할 이유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절의 바울은 복음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혼자 달리려 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