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2:5
복음의 진리가 너희와 함께 있도록
- 복음의 말 εὐαγγέλιον euangelion · 복음
원어
번역
우리가 그들에게 단 한 시간도 굴복하지 아니하였으니 이것은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
We did not give in to them for a moment, so that the truth of the gospel would remain with you.
To whom we gave place by subjection, no, not for an hour; that the truth of the gospel might continue with you.
to whom not even for an hour we gave place by subjection, that the truth of the good news might remain to you.
주석
매튜 헨리 갈 2:1-10 전체에 대하여
사도가 이방인들 가운데서 전하였고 여전히 전하기로 결심한 교리, 곧 유대교의 모든 혼합에서 벗어난 기독교의 교리를 충분히 설명하는 데 보인 그의 충실함을 주목하십시오. 이 교리는 많은 사람에게 달갑지 않았으나 그는 그것을 인정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염려는 그의 지난 수고의 성공이 줄어들거나 그의 장래의 유용함이 방해받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수고의 성공을 단순히 하나님께 의지하면서도, 오해를 풀고 반대자들에 맞서기 위하여 모든 알맞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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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들에게 단 한 시간도 굴복하지 아니하였으니 - 사랑으로는 누구에게나 양보하려 했을 것이지만. 사도는 이처럼 놀라운 슬기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사용하였습니다! 약한 형제들 때문에는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였으나 행 16:3, 거짓 형제들 때문에는 디도에게 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의 진리 - 곧 참되고 순전한 복음이.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게 하려 함이라 - 이방인인 여러분 가운데. 그리하여 우리는 여러분을 위하여 여러분이 내어 주려던 특권을 지켜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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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예루살렘에서 시험대에 오른 것은 디도였습니다. 헬라인인 그가 할례를 받아야 하는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들어온 거짓 형제들"이 그것을 밀어붙였고(갈 2:4), 바울과 바나바는 "단 한 시간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 까닭이 이 절의 뒷부분입니다.
이 절에서 은 소유격으로 ‘복음의 진리’(ἡ ἀλήθεια τοῦ εὐαγγελίου)라는 구를 이룹니다. 이 구는 14절에 한 번 더 나옵니다(갈 2:14). 두 번 모두 손에 잡히는 다툼 한가운데에서 쓰입니다. 여기서는 한 사람의 할례, 거기서는 함께 먹는 식탁입니다. 이 구는 복음 가운데 참된 부분이 따로 있다는 뜻이 아니라,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은 본래 모습 그대로의 복음을 가리킵니다. 웨슬리는 이를 "곧 참되고 순전한 복음이"라고 풉니다 웨슬리.
‘있게 하려’의 διαμείνῃ는 끝까지 남다, 머물러 있다는 뜻이고, 그 진리가 머물 곳은 πρὸς ὑμᾶς, ‘너희와 함께’입니다. 웨슬리의 말대로 "이방인인 여러분 가운데"입니다 웨슬리.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버틴 것은 그 자리에 없던 사람들, 곧 지금 이 편지를 받는 갈라디아의 이방인 신자들을 위해서였습니다.
흠정역의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게 하려 함이라"는 헬라어처럼 ‘진리’를 주어로 세웁니다. 개역한글의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는 ‘진리로’라는 조사 때문에, 너희가 그 진리 안에 머물게 한다는 쪽으로도 읽힙니다. 뜻은 가깝지만, 무엇이 남아야 하는지는 흠정역이 더 또렷하게 보여 줍니다. ‘단 한 시간도’와 ‘일시라도’는 헬라어 πρὸς ὥραν, 한 시간 동안이라도를 각기 옮긴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걸려 있던 것에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거짓 형제들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우리의 자유를 엿보아 우리를 속박하려고" 들어왔습니다(갈 2:4). 복음의 진리와 그것을 믿는 이들의 자유는 함께 서고 함께 넘어집니다. 편지는 뒤에 같은 말로 논증을 맺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유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으니"(갈 5:1).
그렇다고 바울이 무엇이든 거절한 것은 아닙니다. 웨슬리는 그가 디모데에게는 할례를 행하고(행 16:3) 디도에게는 하지 않은 차이를 짚습니다. 약한 형제들을 위해서는 양보했으나 거짓 형제들에게는 양보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도는 이처럼 놀라운 슬기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사용하였습니다" 웨슬리. 매튜 헨리도 그 원칙을 이렇게 말합니다. "합법적으로 따를 수 있는 일들이 있으나, 진리를 배반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을 때에는 거절해야 합니다" 매튜 헨리.
이 절의 ‘너희’는 갈라디아 사람들이지만, 그 뒤로 이 복음을 받은 모든 사람이 그 자리에 섭니다. 오늘 덧붙임 없이 전해진 복음 뒤에는, 양보할 수 없는 자리에서 양보하지 않은 이들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