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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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구절 사전

예레미야 20:15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

  • 복음의 말 בָּשַׂר basar · 소식을 전하다
돌담이 이어진 언덕 위로 네모난 돌집들이 모인 마을이 있고, 아래 흙길에 한 아이가 등을 보인 채 서 있으며 담 곁에 아이들이 앉아 있습니다.
아메리칸 콜로니 사진부, 〈예레미야의 고향 아나돗〉, 1900–1934년 사이 · 출처

원어

렘 20:15

번역

흠정역

내 아버지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기를, 당신에게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하여 그를 매우 기쁘게 한 사람이 저주를 받았더라면,

개역한글

나의 아비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기를 네가 생남하였다 하여 아비를 즐겁게 하던 자가 저주를 받았더면,

BSB

Cursed be the man who brought my father the news, saying, “A son is born to you,” bringing him great joy.

KJV

Cursed be the man who brought tidings to my father, saying, A man child is born unto thee; making him very glad.

LSV

Cursed [is] the man who bore tidings [to] my father, Saying, “A male child has been born to you,” Making him very glad!

주석

  • 매튜 헨리 렘 20:14-18 전체에 대하여

    은혜가 승리할 때에는 자기 어리석음을 부끄러워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에 감탄하며, 다른 때에 자기 영을 지키도록 경고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선지자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긴 그 유혹이 얼마나 강했는지 보십시오! 그는 자기의 첫 호흡이 마지막 호흡이 아니었음에 화를 냅니다. 이러한 소원이 우리가 같은 말을 하라고 기록된 것이 아님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거기서 좋은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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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웨슬리

    이 구절에 대한 말은 따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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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바사르가 기쁜 소식에 쓰인 자리 가운데 이만큼 쓰라린 곳은 드뭅니다.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으로 아버지를 기쁘게 한 사람을, 그 아들인 예레미야가 저주합니다.

예레미야 20장은 성전의 우두머리 감독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때리고 차꼬에 채운 일로 시작합니다 (렘 20:1–2). 이어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쏟아 놓는 탄식이 나옵니다. "주의 말씀이 날마다 내게 치욕거리와 조롱거리가 되었으므로" (렘 20:8) 다시는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그 말씀이 "내 마음속에 타오르는 불 같아서 내 뼈 속에 사무치니" (렘 20:9) 참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탄식은 신뢰로 올라가 "주께 노래하라.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 (렘 20:13)에 이르렀다가, 바로 다음 절에서 자기가 태어난 날을 저주하는 깊은 어둠으로 떨어집니다 (렘 20:14). 이 구절은 그 저주의 한가운데 있습니다.

‘소식을 전하여’는 비사르(בִּשַּׂר), 의 피엘 완료 3인칭 남성 단수입니다. 목적어는 ‘내 아버지’로, 소식을 받는 사람이 곧바로 목적어 자리에 섭니다. 소식의 내용은 ‘네게 아들이, 사내아이가 태어났다’이고, 그 결과는 ‘그를 크게 기쁘게 하였다’(삼메아흐 심마하후)입니다. 같은 동사를 겹쳐 쓴 강조형입니다. 여기의 바사르는 분명히 좋은 소식입니다. 패전을 나르던 소식꾼(삼상 4:17)과 달리 이 사람은 한 집안의 기쁨을 날랐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이 열어 준 삶이 너무 괴로워, 그 아들이 이제 소식을 가져온 사람을 저주합니다.

히브리어는 ‘저주받을지어다(아루르), 그 사람’이라는 저주의 정형구로 시작합니다. 흠정역은 이를 "그를 매우 기쁘게 한 사람이 저주를 받았더라면"이라고 하여 16–17절로 이어지는 소원의 말로 옮겼고, 개역한글도 "아비를 즐겁게 하던 자가 저주를 받았더면"이라고 같은 쪽을 택했습니다. 개역한글은 아들이 태어났다는 말을 ‘생남하였다’ 한 낱말로 줄였습니다. 영어 번역들은 ‘저주받을지어다, 그 사람’이라는 정형구를 그대로 둡니다. 우리말 번역들은 이 저주를 지난 일을 향한 탄식으로 풀어, 예레미야의 말이 남에게 퍼붓는 저주라기보다 자기 존재를 향한 절규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매튜 헨리는 "그는 자기의 첫 호흡이 마지막 호흡이 아니었음에 화를 냅니다"라고 하면서 매튜 헨리, "이러한 소원이 우리가 같은 말을 하라고 기록된 것이 아님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거기서 좋은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라고 덧붙이고 매튜 헨리, "죄인들이 자기를 대적하여 이처럼 거역한 것을 견디어 내신 분을 생각합시다"라는 말로 맺습니다 매튜 헨리. 웨슬리는 찬양에서 저주로 넘어가는 "이 갑작스러운 변화 때문에" 어떤 이들은 이 말을 원수들의 학대가 전에 그를 몰아넣었던 격정을 되풀이한 것으로 본다고 전합니다 웨슬리.

예레미야가 처음 부르심을 받을 때 여호와께서는 "내가 너를 배 속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렘 1:5) 하셨습니다. 아버지에게 소식을 전한 사람이 알던 것보다, 그 아이의 태어남에는 더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천사가 목자들에게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가져왔노라" (눅 2:10) 하고 전한 것도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이었고, 그 아들도 예레미야처럼 멸시와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그 소식을 담은 성경이 예레미야의 절규를 지우지 않고 남겨 두었으니, 이 소식을 듣는 사람도 자기의 어둠을 하나님 앞에서 감추지 않고 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