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1
성전에서 복음을 선포하실 때에
- 복음의 말 εὐαγγελίζομαι euangelizomai · 복음을 전하다
원어
번역
그 무렵의 어느 날 그분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며 복음을 선포하실 때에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와서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One day as Jesus was teaching the people in the temple courts and proclaiming the gospel, the chief priests and scribes, together with the elders, came up to Him.
And it came to pass, that on one of those days, as he taught the people in the temple, and preached the gospel, the chief priests and the scribes came upon him with the elders,
And it came to pass, on one of those days, as He is teaching the people in the temple, and proclaiming good news, the chief priests and the scribes, with the elders, came on [Him],
주석
매튜 헨리 눅 20:1-8 전체에 대하여
사람들은 흔히 자기의 불신과 불순종의 핑계를 찾으면서도 계시의 증거와 복음의 진리를 살펴보는 체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요한의 세례에 관한 분명한 질문으로 대답하셨는데, 일반 백성도 그것에는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그것이 하늘로부터 온 것임을 알았고, 그 안에는 세상적인 경향이 전혀 없었습니다. 자기가 가진 지식을 묻어 두는 사람들은 마땅히 더 이상의 지식을 거절당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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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 누가는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신 일을 기록한 뒤, 그리스도께서 베다니로 가신 일과 다시 성으로 돌아오신 일, 무화과나무에 얽힌 사정, 그리고 놀란 제자들에게 믿음의 능력에 대해 주신 대답을 생략합니다. 그는 마가처럼 날마다 일어난 일을 차례로 따라가지 않으므로 이 모든 것을 생략하고 다음 말로 시작합니다. 하루는, 이는 마태와 마가가 그 일이 있었다고 기록한 바로 그날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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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에 대한 말은 따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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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누가복음에서 좋은 소식을 전한다는 동사가 마지막으로 나오는 곳입니다. 처음 나온 곳이 성전의 분향 제단 곁이었듯이(눅 1:19), 마지막도 성전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며칠 앞두고 그곳에서 백성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십니다.
그 무렵의 어느 날 그분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며 복음을 선포하실 때에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와서
눅 20:1예루살렘에 들어오신 예수님은 성전에서 파는 자들과 사는 자들을 내쫓으시고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눅 19:46) 하셨습니다. 그 뒤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고, 지도자들은 그분을 죽이려 했으나 온 백성이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손을 쓰지 못했습니다(눅 19:47–48). 이 구절은 그 날들 가운데 하루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 곧 산헤드린을 이루는 세 무리가 와서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들을 행하느냐?"(눅 20:2) 하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왔는지 사람에게서 났는지를 되물으시고, 그들이 대답하지 못하자 자기 권위도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누가복음에서 사람으로서 처음 좋은 소식을 전한 이가 요한이었으니(눅 3:18), 이 동사가 마지막으로 나오는 자리에서 다시 요한의 이름이 불리는 셈입니다.
여기서 는 현재 중간태 분사 εὐαγγελιζομένου로, 역시 속격 분사인 διδάσκοντος(‘가르치며’)와 함께 속격 독립 구문을 이룹니다. 두 일이 이어지고 있던 바로 그때 지도자들이 들이닥쳤다는 뜻입니다. 가르침과 복음 전함이 한 쌍으로 묶인 이 표현은 사도행전에서 다시 나옵니다. 사도들은 날마다 성전과 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전하기를 그치지 않았는데(행 5:42), 거기서도 같은 두 동사가 쓰였습니다. 장소는 , 곧 성소만이 아니라 뜰을 포함한 성전 경내 전체입니다.
흠정역은 ‘백성을 가르치며 복음을 선포하실 때에’로, 개역한글은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로 옮겨, 두 번역 모두 이 동사를 ‘복음’으로 옮깁니다. 다른 것은 지도자들의 이름입니다. 흠정역은 킹제임스 성경의 chief priests를 따라 ‘수제사장들’로, 개역한글은 ‘대제사장들’로 옮겼습니다. 같은 무리를 가리킵니다.
카테나에서 에우세비우스는 지도자들의 물음 속에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레위의 혈통에서 난 자들만이 가르칠 권세와 성물을 맡을 권한이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보고, 그들이 성경을 알았다면 이분이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르는 제사장이심을 기억했으리라고 답합니다 에우세비우스. 베다는 예수님이 대답 대신 질문을 하신 것을 두고 "그들이 침묵하거나 말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정죄하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풉니다 베다. 매튜 헨리는 사람들이 흔히 "계시의 증거와 복음의 진리를 살펴보는 체합니다"라고 하며, 실은 불신의 핑계를 찾는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매튜 헨리.
십자가를 앞둔 마지막 날들에도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와서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도 그 일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 소식은 듣는 사람이 따져 묻는 동안에도 계속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