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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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구절 사전

마태복음 11:5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선포된다

  • 복음의 말 εὐαγγελίζομαι euangelizomai · 복음을 전하다
저녁의 가난한 갈릴리 마을 광장, 돌 우물에 더는 쓰지 않는 목발과 지팡이가 기대어 있고, 물을 긷는 여인들과 뛰노는 아이들, 아이를 높이 안아 올린 어머니, 낮은 담에 앉아 빵을 나누는 일꾼들이 기쁜 얼굴로 광장 곳곳에 있습니다.
저녁 마을 우물가에 세워 둔 목발과 지팡이

원어

마 11:5

번역

흠정역

곧 눈먼 자들이 시력을 받으며 다리 저는 자들이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정결하게 되며 귀먹은 자들이 들으며 죽은 자들이 일으켜지며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선포된다, 하라.

개역한글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BSB

The blind receive sight, the lame walk, the lepers are cleansed, the deaf hear, the dead are raised, and the good news is preached to the poor.

KJV

The blind receive their sight, and the lame walk, the lepers are cleansed, and the deaf hear, the dead are raised up, and the poor have the gospel preached to them.

LSV

blind receive sight, and lame walk, lepers are cleansed, and deaf hear, dead are raised, and poor have good news proclaimed,

주석

  • 매튜 헨리 마 11:2-6 전체에 대하여

    어떤 이들은 요한이 자기 자신의 확신을 위해 이 질문을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참된 믿음이 있는 곳에도 불신앙이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선한 사람들 안에 남아 있는 불신앙이 때로 시험의 때에 가장 중요한 진리들까지도 의심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요한의 믿음이 이 일로 무너지지 않았고, 다만 그 믿음이 강해지고 굳건해지기를 바랐던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요한이 제자들의 확신을 위해 그들을 그리스도께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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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부들 (카테나) 마 11:5

    히에로니무스: 이 마지막 것은 처음 것에 못지않습니다. 이것을 마치 ‘가난한 자에게까지도’ 하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해하십시오. 그리하여 귀한 자와 천한 자, 부한 자와 가난한 자 사이에 전파에서 아무 차별이 없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스승의 엄정함을 입증하고 교사의 진실함을 입증하니, 그분의 눈에는 구원받을 수 있는 모든 사람이 동등하다는 것입니다. 크리소스토무스: 누구든지 나로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할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신 말씀은 사신들을 겨냥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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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웨슬리 마 11:5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선포된다 - 모든 것 중에 가장 큰 긍휼입니다. 사 29:18;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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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감옥에 갇힌 세례 요한이 제자들을 보내 묻습니다. "선생님이 오실 그분이오니이까"(마 11:3). 예수님은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으시고, 듣고 본 일들을 전하라 하십니다. 그 목록의 마지막 자리에 복음이 있습니다.

곧 눈먼 자들이 시력을 받으며 다리 저는 자들이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정결하게 되며 귀먹은 자들이 들으며 죽은 자들이 일으켜지며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선포된다, 하라.

마 11:5

요한은 헤롯에게 붙잡혀 있었습니다(마 14:3). 그는 요르단에서 가리켰던 분이 하시는 일들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이 질문을 보냅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이사야의 약속들을 엮은 것입니다. 눈먼 자와 귀먹은 자와 다리 저는 자는 사 35:5–6에서, 일어나는 죽은 자들은 사 26:19에서, 가난한 자들에게 전하는 좋은 소식은 사 61:1에서 왔습니다. 목록은 죽은 자들이 일으켜지는 데서 끝나지 않고 가난한 자들에게서 끝납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나로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할 자는 복이 있도다"라는 말씀이 이어집니다(마 11:6).

여기서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 가 쓰였습니다. 형태는 현재 수동태 직설법 3인칭 복수(εὐαγγελίζονται)이고, 주어는 ‘가난한 자들’(πτωχοί)입니다. 직역하면 ‘가난한 자들이 좋은 소식을 받는다’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소식을 받는 사람으로 문장의 주어 자리에 섭니다. 앞의 동사들도 모두 현재형이어서, 요한의 제자들이 지금 눈앞에서 보는 일들입니다. 이 동사는 이사야 61:1의 히브리어 를 칠십인역이 옮긴 말이기도 합니다. 바사르는 패전 소식에도 쓰이던 말이지만(삼상 4:17), 이사야의 그 대목에서는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이가 낮은 자들에게 전하는 기쁜 소식입니다. 마태는 이 동사를 이곳에서만 씁니다.

흠정역은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선포된다’, 개역한글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로 옮겨, 두 번역 모두 헬라어의 수동 구문을 뒤집어 복음을 주어로 세웠습니다. 우리말에 자연스러운 선택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사 61:1의 번역입니다. 흠정역은 히브리어(עֲנָוִים, 괴로움 당하는 낮은 자들)를 킹제임스 성경을 따라 ‘온유한 자들에게 좋은 소식을’로, 개역한글은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로 옮깁니다. 흠정역으로 읽으면 이사야의 ‘온유한 자들’과 ‘좋은 소식’이 마태에서 ‘가난한 자들’과 ‘복음’이 되는 셈인데, 이는 칠십인역이 그 낱말을 ‘가난한 자들’로 옮겼고 마태복음의 헬라어가 그 표현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웨슬리는 이 마지막 항목에 "모든 것 중에 가장 큰 긍휼입니다"라고 적습니다 웨슬리. 카테나에서 히에로니무스는 "이 마지막 것은 처음 것에 못지않습니다"라고 하고 히에로니무스, 이로써 전파에서 귀한 자와 천한 자, 부한 자와 가난한 자 사이에 아무 차별이 없다고 풉니다. 크리소스토무스는 예수님이 말 대신 일로 대답하신 까닭을 "행위의 증거가 말의 증거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라고 설명합니다 크리소스토무스. 요한이 왜 물었는지는 해석이 갈립니다. 매튜 헨리는 요한 자신의 확신을 위해서였다는 견해와 제자들을 위해서였다는 견해를 함께 소개하고 매튜 헨리, 힐라리우스와 크리소스토무스는 제자들을 위해서였다고 봅니다.

메시아를 알아보는 표징의 끝에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 일이 놓여 있습니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이 소식을 받는 사람으로 이름 불린다는 것, 그것이 이 구절이 오늘의 독자에게 건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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