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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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구절 사전

시편 96:2

그분의 구원을 날마다 전하라

  • 복음의 말 בָּשַׂר basar · 소식을 전하다
햇빛이 비치는 풀밭 위로 굵은 떡갈나무들이 가지를 넓게 펼치고, 잎사귀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입니다.
이반 시시킨, 〈떡갈나무 숲〉, 1887년 · 출처

원어

시 96:2

번역

흠정역

주께 노래하고 그분의 이름을 찬송하며 그분의 구원을 날마다 전할지어다.

개역한글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 이름을 송축하며 그 구원을 날마다 선파할지어다

BSB

Sing to the LORD, bless His name; proclaim His salvation day after day.

KJV

Sing unto the LORD, bless his name; shew forth his salvation from day to day.

LSV

Sing to YHWH, bless His Name, Proclaim His salvation from day to day.

주석

  • 매튜 헨리 시 96:1-9 전체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땅에서의 사역을 마치시고 하늘의 영광 가운데 영접되셨을 때에, 교회는 그분께 새 노래로 노래하고 그분의 이름을 찬송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분의 사도들과 복음 전하는 사람들은 이교도들 가운데 그분의 구원을, 모든 백성들 가운데 그분의 이적들을 나타내었습니다. 온 땅이 여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도록 부르심을 받습니다. 우리는 「거룩함의 아름다움으로」 그분께 경배해야 하니,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경배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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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웨슬리

    이 구절에 대한 말은 따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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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시편 96편은 온 땅을 불러 새 노래를 부르게 합니다. 세 번 ‘노래하라’고 한 뒤, 그 노래는 소식이 됩니다. 헬라어 구약으로 읽으면 이 구절의 명령은 신약이 복음을 전한다고 할 때 쓰는 바로 그 동사입니다.

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오 새 노래로 주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주께 노래할지어다" (시 96:1). 이 구절에서 노래는 찬송과 소식이 되고, 다음 절에서 "그분의 영광을 이교도들 가운데" (시 96:3) 밝히 알리라는 명령으로 넓어집니다. 그 까닭은 "민족들의 모든 신들은 우상들이나 주께서는 하늘들을 만드셨도다" (시 96:5)라는 고백입니다. 시는 민족들에게 전할 말을 한 문장으로 줄여 줍니다. "주께서 통치하심을 이교도들 가운데서 말할지어다" (시 96:10). 그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숲이 기뻐하는 까닭을 말하며 끝납니다. "그분께서 오시되 친히 땅을 심판하러 오시기 때문이로다" (시 96:13). 이 시는 다윗이 궤를 예루살렘에 모신 날 부르게 한 노래 속에도 거의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대상 16:23).

‘전할지어다’는 의 피엘 명령형 2인칭 남성 복수 바세루(בַּשְּׂרוּ)이고, 목적어는 ‘그분의 구원’(예슈아토)입니다. 는 ‘구원하다’(야샤)에서 나온 말인데, 예수님의 히브리 이름 예슈아(여호수아)도 같은 뿌리에서 왔습니다. 천사가 요셉에게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라" (마 1:21)고 한 말이 그 이름에 담겨 있습니다. ‘날마다’는 히브리어로 ‘날에서 날로’(미욤 레욤)입니다.

헬라어 구약인 칠십인역은 이 줄을 εὐαγγελίζεσθε ἡμέραν ἐξ ἡμέρας τὸ σωτήριον αὐτοῦ, 곧 ‘날마다 그분의 구원을 좋은 소식으로 전하라’로 옮겼습니다. 신약의 가 여기서는 온 땅에 내리는 명령으로 서 있습니다. 사도들이 민족들에게 나아가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은 이 시편이 오래전에 온 땅에 내린 명령을 이루고 있었던 셈입니다.

흠정역은 "그분의 구원을 날마다 전할지어다", 개역한글은 "그 구원을 날마다 선파할지어다"라고 옮겼습니다. ‘선파’는 널리 펴서 알린다는 뜻의 한자어로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말입니다. 개역한글은 같은 노래가 실린 역대상에서는 이 동사를 ‘선포하다’로 옮겼습니다. 한 노래의 한 동사가 두 곳에서 다른 말을 얻은 것은, 바사르가 우리말 한 낱말에 다 담기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웨슬리는 이 시가 노래하는 까닭을 "언약궤를 옮기는 일이 아니라 메시아의 오심이라는 이 새롭고 위대한 계기 때문입니다"라고 풉니다 웨슬리. 역대기에 실린 같은 노래가 궤를 모신 날의 노래였음을 알면서도, 시편의 ‘새 노래’를 더 큰 일을 향한 노래로 읽은 것입니다. 매튜 헨리도 그리스도께서 하늘 영광에 들어가신 뒤 "그분의 사도들과 복음 전하는 사람들은 이교도들 가운데 그분의 구원을, 모든 백성들 가운데 그분의 이적들을 나타내었습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이 시에서 구원의 소식은 땅을 심판하러 오시는 왕의 소식으로 끝납니다. 그런데 그 오심 앞에서 들판과 숲은 떨지 않고 기뻐합니다. 의로 세상을 심판하실 분이 오신다는 것이 온 땅에 좋은 소식으로 들린다는 것, 이 시가 날마다 전하라고 한 소식은 그런 소식입니다.

출처

  1.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번역자들, 칠십인역 (구약의 그리스어 번역) — 기원전 3–1세기.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옮긴 번역으로, 신약의 저자들이 자주 인용한다. בָּשַׂר(바사르)를 대개 εὐαγγελίζομαι(에우앙겔리조마이)로 옮겼고(사무엘하 18장, 시편 40:9, 68:11, 96:2, 이사야 40:9, 52:7, 61:1), 사무엘하 4:10에서는 소식의 상을 εὐαγγέλια라 했다. 영역: 브렌턴(1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