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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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구절 사전

로마서 1:16

부끄럽지 않은 복음

  • 복음의 말 εὐαγγέλιον euangelion · 복음
검은 바탕 위에 가장자리가 해지고 군데군데 구멍이 난 길쭉한 갈색 파피루스 조각이 놓여 있고, 헬라어 대문자가 희미하게 줄지어 적혀 있습니다.
〈파피루스 26〉, 로마서 1:10–16, 7세기 (서던 메서디스트 대학교 브리드웰 도서관) · 출처

원어

롬 1:16

번역

흠정역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그 복음이 믿는 모든 자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그리스인에게로다.

개역한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BSB

I am not ashamed of the gospel, because it is the power of God for salvation to everyone who believes, first to the Jew, then to the Greek.

KJV

For I am not ashamed of the gospel of Christ: for it is the power of God unto salvation to every one that believeth; to the Jew first, and also to the Greek.

LSV

for I am not ashamed of the good news of the Christ, for it is the power of God to salvation to everyone who is believing, both to Jew first, and to Greek.

주석

  • 매튜 헨리 롬 1:16-17 전체에 대하여

    이 구절들에서 사도는 서신 전체의 의도를 열어 보입니다. 그는 여기서 모든 육체에 대한 죄의 고발을 제시하고, 정죄에서 건져지는 유일한 방법을 선포하니,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긍휼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 마음의 청결, 감사하는 순종, 그리고 그리스도를 향한 살아 있는 믿음만이 낳을 수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은혜와 성품에서 자라려는 간절한 소원을 세웁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죄 있는 죄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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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웨슬리 롬 1:16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 세상에는 이것이 어리석음이요 약함이므로(고전 1:18), 세상의 판단으로는 그가 이것을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며, 특히 세상의 머리요 극장인 로마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복음이 이러함을 알기에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 복음이 믿는 모든 자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권능 - 하나님 자신의 방식으로 구원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크고 영광스럽게 능력 있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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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1:16–17은 로마서 전체의 주제로 읽혀 온 두 절입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이들에게도 복음을 선포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한 뒤 (롬 1:15), 그 까닭을 댑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그 복음이 믿는 모든 자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이라" (롬 1:16). 이어지는 17절은 그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까지 계시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명사 은 여기서 동사 , 곧 ‘부끄러워하다’의 목적어입니다. 현재 직설법 1인칭 단수에 부정어 οὐ가 붙어, 지금 그가 서 있는 태도를 말합니다. 부끄럽지 않다는 말은 담담하게 들리지만 실은 확신의 말이고, 누구든지 나와 내 말들을 부끄러워하면 사람의 아들도 그를 부끄러워하리라는 예수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막 8:38).

그 확신의 근거가 이어집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 곧 권능이며, 그 권능은 , 곧 구원으로 이끕니다. 복음은 구원에 관한 정보이기 전에 구원하는 힘입니다. 받는 이는 믿는 모든 자, 현재분사로 지금 믿고 있는 사람 누구나입니다.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그리스인에게로다’는 복음이 약속을 받은 백성에게 먼저 오고 이어 모든 민족에게 간다는 역사의 순서입니다. 하나님은 이방인들의 하나님이기도 하시기 때문입니다 (롬 3:29).

흠정역의 ‘그리스도의 복음’은 공인 본문(TR)을 따른 것이고, 오래된 사본들에는 ‘그리스도의’가 없어 개역한글은 여기서 ‘복음’이라고만 합니다. 뜻은 다르지 않습니다. 9절이 이미 그 복음을 아들의 복음이라고 불렀습니다.

두 번역의 차이는 또 있습니다. 흠정역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해서 εἰς σωτηρίαν(구원을 향하여)의 방향을 살리고, 개역한글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해서 주시는 분을 드러냅니다. 흠정역의 ‘그리스인’은 개역한글에서 ‘헬라인’입니다.

웨슬리는 세상이 보기에 복음은 어리석음이요 약함이어서 세상의 판단으로는 바울이 이를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며 "특히 세상의 머리요 극장인 로마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라고 씁니다 웨슬리. 그리고 "성 바울이 이 서신에서 복음의 요약을 담듯이, 이 절과 다음 절에서는 서신의 요약을 담습니다"라고 덧붙입니다 웨슬리. 매튜 헨리는 다음 절의 ‘믿음에서 믿음까지’를 두고 "믿음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시작에서나 진행에서나 모든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매튜 헨리.

로마에서 이 복음이 어떻게 보였는지는 몇 해 뒤의 일이 보여 줍니다. 64년 큰불 뒤 네로에게 처형된 그리스도인들을 두고, 2세기 초의 타키투스는 그들의 신앙을 해로운 미신이라 불렀습니다 타키투스, 연대기 15.44.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을 주라 부르는 소식은 유대인에게는 걸림돌이요 그리스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었습니다 (고전 1:23). 그런 도시를 향해 바울은 부끄럽지 않다고 씁니다. 다음 절의 ‘하나님의 의’는 뒷날 루터가 오래 씨름한 말이 되었습니다 루터, 라틴어 저작 전집 서문.

바울이 부끄러워하지 않은 까닭은 복음이 강해 보여서가 아니라, 그것이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절은 복음 앞에 선 사람에게, 그 소식의 힘이 전하는 사람에게도 듣는 사람에게도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출처

  1. 타키투스, 연대기 15.44 — 116년경. 64년 로마의 큰불 뒤 네로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죄를 씌워 잔혹하게 처형했다고 전하며, 짐승 가죽을 씌워 개에게 찢기게 하거나 십자가에 달거나 불태워 밤의 횃불로 삼았으며, 그 잔혹함에 사람들이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겼다고 쓴다. 그들의 이름이 빌라도 치하에서 처형된 그리스도에게서 왔다고 기록한다.
  2. 마르틴 루터, 라틴어 저작 전집 서문 1545 — 로마서 1:17의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주시는 의로 깨달은 일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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